1inch 뉴스 2008/12/26 06:33 삐딱이

오늘(26일) 새벽 6시, 언론노조가 총파업에 나선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불도저 입법' 가운데 하나인 미디어관련법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공멸하거나 재벌방송만 남거나... 구속 각오하고 총파업을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MBC의 간판 아나운서들이 이번 파업에 발벗고 나섰다. <뉴스데스크>의 박혜진과 <뉴스24>의 김주하를 비롯해 최율미·손정은·박상권·이정민·김정근·허일후 아나운서가 맡은 프로그램에 '대타'가 투입될 모양이다. 아나운서들의 파업 참여는 뉴스 프로그램의 펑크 말고도, 방송사 파업을 보는 대중들의 인식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방송사 어느 직종보다도 대중적인 친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2008년을 불과 일주일도 안 남긴 상태에서 벌어지는 방송사, MBC 파업 예고를 보면서 1988년과 1992년의 MBC 파업이 떠오른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시선집중>의 손석희 아나운서(성신여대 교수)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손석희는 당시 파업의 핵심 주동자라기보다는, 대중적인 지명도에 의한 파업의 상징이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물론 손석희는 당시 노조 활동과 파업에 적극 참여했다.


1992년 수의(囚衣) 입은 손석희

                   ▲ 수의 입은 손석희는 1992년 MBC 파업의 상징이었다.

1988년 MBC 노조는 파업 전 쟁의에 돌입했다. 그 쟁의의 표식으로 모든 노조원들이 가슴에 '공정방송 쟁취'가 쓰인 리본을 달고 방송에 출연하기로 했다. 당시 주말 9시 뉴스를 진행하던 손석희는 회사 측과 노조 측으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리본을 "달고 나갈 용기도 없고 달지 않을 용기도 없었던" 손석희는 결국 양복 안쪽에 있는 와이셔츠에 리본을 달고 뉴스를 진행했다.

그러나 큰 자괴감이 몰려왔다. "양복 속에서 삐죽이 보일 듯 말 듯했던 리본은 내가 기회주의자임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하며 괴로워하던 그는 다음날 양복에 리본을 달고 나감으로써 비겁함을 씻어낼 수 있었다.

그 뒤 손석희는 노조 활동에 적극 나서게 됐고, 1992년 MBC 파업 때 파업 주동자로 몰려 20일간 구치소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미 MBC의 간판 아나운서로 자리 매김하고 있던 그가 수의를 입고 TV에 등장한 것은 충격이었다. 대중들은 이 모습을 보고 손석희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손석희는 2006년 1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나야말로 노조 활동으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사람"이라며 "한 일도 없는데 무슨 민주투사라도 되는 양 대접받는 것"을 걱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월간 <인물과 사상> 2006년 4월호에 실린 글 가운데)


나는 1992년 MBC 파업 때 자유기고가로 현장을 취재했다.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처럼 '빡세게' 투쟁 현장에 나섰던 사람들이 정찬형·이채훈·김평호 PD, 성경환 아나운서 등으로 기억된다. (※ 김평호 PD는 현재 단국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정찬형 PD는 라디오국장, 성경환 아나운서는 아나운서국장을 역임하고 현재도 MBC에서 활동 중이다. 이채훈 PD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 등 현업에서 굵직한 기획물들을 제작했다.)

1992년 MBC 파업 당시 백지연 아나운서도 '열성파'는 아니었지만 파업에 동참해 회사측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당시 백지연 아나운서는 MBC, 아니 방송사를 대표하는 여성 앵커의 젊은 상징이었다. 그런 탓에 이번 MBC 파업 때 성경환 전 아나운서국장이 김주하 앵커가 진행하던 <뉴스24>를 대신 맡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1992년 파업 당시가 떠올라 묘한 느낌이 들었다. 성경환 아나운서도 이번에는 간부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만으로는 당시 상황이 가물가물하지만, 취재 기자로서의 현장 느낌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1992년 MBC 파업 현장은 활기찼다. 노조원들의 목표와 연대의식도 강했다. 노조 간부인 동료들이 닭장차에 끌려갈 때도, 법정에서 수의를 입고 수갑 찬 모습을 보고도 그들의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전의를 불태웠다. 그리고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랑스런 방송민주화투쟁에 한 획을 근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한 방송민주화 투쟁이 2008년도에 또다시 벌어진다는 건, 언론을 통제하려는 보수정권의 탐욕과 죽지 않은 언론 양심의 또다른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그 싸움의 승부는 결정돼 있다. 다만, 그 판정의 시기가 언제이냐일 뿐이다. 역사는 정권의 탐욕도 간혹 되풀이 되지만, 그 탐욕을 꺾는 양심의 승리도 되풀이 된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여실히 증명될 것이라고 믿는다.

 

출처 :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2258199
작성자 : 삐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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